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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이야기

본색

Undertaker 2009. 3. 4. 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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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처음에 제목을 타락이라고 했었지만, 아무래도 적절한 제목이 아닌 듯 해 수정했다.

타락은 본래 깨끗했거나 정당했던 사람이 더러워지거나 부정을 저질렀을 때 사용하는 어휘인데, 이 양반의 경우는 이보다는 본색이 드러났다고 해야 옳을 듯 했기 때문이다.

본인의 반어법 이후에 해명글, 그리고 그에 따른 많은 반론들(심지어는 대학 교수님의 반론까지)이 있기에 굳이 이제와서 내가 조목조목 신해철이 늘어놓은 궤변들을 따지는 건 에너지의 낭비이고 봐 줄 사람도 없기에 그런 건 굳이 하지 않는다. 뭐, 일기장에 끄적거리는 느낌으로 적고 있기에 문체도 경어가 빠져있지만.

팬이라고까지는 못하겠지만 나는 꽤나 신해철을 좋아하던 사람 중 하나였다.

무한궤도때부터 쭈욱 들어왔...더라면 올드팬이겠지만, 그 정도까진 아니다. 아마 처음 들었던 건 넥스트 2집 시절이었을 것이다. 그때부터 쭈욱 넥스트의 음악을 들었었고 가끔은 심각하다 못해 오버스럽기까지한 가사를 보면서도 서태지의 그것과는 또 다른 장르로 그것을 표현하고 있었고, 그런 일면에 나름 끌렸는지도 모른다.

그러던 그가 언제부터인가 라디오를 시작했고, 이것은 넥스트의 보컬 신해철을 마왕이라는 위치로까지 승격시켜 주었다.

특히 군대시절 고스트를 많이 들었었는데, 처음에 의외였던 건 어린 애청자들이 상당히 많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신해철의 음악적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시절을 2000년대 초반의 중고등학생이 함게 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그들은 라디오를 통해 팬이 된 후 음악을 접한 케이스도 많았을 것이다. 물론, 그 반대도 있었겠지만.

올드 팬들과 이런 신규(?) 팬들의 추종에 힘입어 그는 마왕이라는 칭호를 얻었고, 솔로활동 때에도 은연중에 이런 칭호를 의식하는 퍼포먼스를 선보이곤 했다. 뭐, 그때의 나는 그를 꽤 좋아했던 편이기에 나름 유쾌했지만.

이렇게 마왕이라는 칭호를 얻은 후, 또 그는 갑자기 시사프로그램의 게스트로도 방송에 출연하기 시작했다. 연예프로그램이나 쇼프로그램 등에 나오는 거야 연예인들에게는 비일비재하니 별 감흥이 없었다손 치더라도, 시사프로그램에 나오는 연예인은 극히 일부였기에 이런 그의 행보에는 또 주목이 갈 수밖에 없었다.

그는 나름 시사프로그램에서도 그만의 언변을 바탕으로 좌파의 예능계 아이콘같은 위치를 얻기 시작했다. 고스트의 애청자들과 팬들에게 받은 마왕이라는 칭호에, 시사프로그램에서 얻은 이러한 좌파 성향의 연예인이라는 위치. 그에게는 아주 달콤했을 것이다. 불과 몇년 전 라디오 프로그램을 제외하고는 대중에게서 완전히 잊혀졌던 시절과는 천지차이였을 것이다.

아무래도 이런 거창한 수식어는 그에게는 너무 큰 짐이었나 보다. 지금 생각해보면 결국 신해철은 그 마왕, 좌파의 아이콘이라는 칭호 덕에 스스로 무너져 내린것이나 다름없었으니 말이다. 사실 연예인이 광고하나 찍는데 이리 소란떨 필요도 없다. 최민수처럼 사채광고를 찍은것도 아니고(뭐 사실 엄밀히 말하면 사채광고 역시나 찍었다고 도덕적으로 욕먹을 건덕지는 없긴 하다) 기껏해야 학원광곤데.

하지만 그 학원광고라는게 그때까지 그가 이용해왔던, 좌파 성향의 연예인이라는 인식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기에 문제가 되었던 것인데, 이것이 그에게 무거운 짐이었다고 한 이유는 이 칭호들이 그에게 솔직하게 말을 못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마왕이니까, 나는 아이콘이니까 뭔가 그럴듯하게 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 때부터 그의 뇌는 꼬이기 시작했다.

솔직하게 말해서 처음 파문이 일었을 대 그냥 까놓고 '돈이 아쉬워서 했다'라고 했으면 욕은 바가지로 먹었을지언정 지금과 같은 최악의 사태는 면할 수 있었을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체면을 유지하면서 어떻게든 '있는 척'을 하려고 했고, 그 결과로 장문의 궤변과 360도 전방위를 향한 욕설, 그리고 Fxxx Yxx로 대미를 장식했다. 이건 이미 변론의 여지가 없다. 적어도 '좌파적 연예 아이콘' 신해철이라는 존재의 사망신고서에 스스로 서명한 셈이다.

앞으로도 그의 콘서트장에는 팬들이 모일 것이고, 그들은 그를 마왕이라고 부르며 떠받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언행이 불일치하는 나약한 인간임이 밝혀진 지금, 더 이상 그가 곡을 통해 어떠한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해도 그 설득력은 이전의 10%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다. 스스로의 소신조차 지키지 못하는 사람의 메시지를 누가 순순히 받아들인단 말인가?

나 개인적으로는 이제 그에 대한 호감을 철회하고 안티가 되기로 했지만, 안티라고 해서 적극적인 안티를 할 생각은 없다. 오히려 약간이기는 하지만 그에게 연민을 느끼기도 한다. 신해철이라는 인간의 그릇은, 시사적인 인물이 되기에는 너무나도 좁았다. 좀 과하게 말하면 신해철은 분에 넘치는 옷을 입었다가 그 옷에 깔려서 넘어져 버린 것이나 마찬가지다. 사태가 여기에 이르른 지금 가정은 무의미하지만, 그가 시사프로그램에 나서지 않고 그저 고스트의 마왕으로 만족했더라면, 그 나름대로의 영역을 고수했을지도 모른다.

모르긴 몰라도 아마 신해철의 이번 작태에 내심 가장 쾌재를 부른 건 보수를 자칭하는 일부 반동세력이 아니었을까(이들에게 보수라는 명칭을 부여하는 것은 이 땅의 진정한 보수들에 대한 모독이다).

좌파적 연예인이 김장훈 하나로 줄었다는 점은 좀 아쉽다. 김장훈은 훌륭한 사람이기는 하지만 신해철만큼의 이슈 메이커라던가 아이콘이 되기에는 약간은 모자란 면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굳이 분류하면 좌파도, 우파도 아닌 중도파 성향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좌파든 (진정한)우파든 그들의 아이콘이 있다는 것은 정치의 활성화를 위해서도 좋은 일 아니겠는가.

Rest In Peace, '좌파 연예인' 신해철.
그가 이 글을 볼 리도 없고 별로 기대도 안하지만, 나만의 조그만 소망이라면 앞으로는 부디 곡에 사회적 메시지나 심각한 무언가를 담지 말기를 바랄 뿐이다. 이미 그가 쓰는 그러한 메시지의 설득력은 0%에 수렴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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