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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이야기

지름신 문화에 대한 반성

Undertaker 2009. 3. 30. 16:05

흔히 '지름신'으로 대표되는 소비성향이 있다. 갑작스러운 충동구매를 희화화/의인화하여 지칭하는 용어인데, 뭐 나도 지름신이라는 용어는 사용하고 그리 거부감은 없는 편이다. 다만, 이것이 어느 정도의 범위 이내일 때에는 희화화에 대해 웃어 넘길 수도 있고 나름 유머도 느낄 수 있지만, 이것이 자신의 수준을 뛰어넘어버리게 되면 그때부터는 사회적인 질환으로 발전한다.

지름신이라는 용어까지는 그래도 소규모의 지름, 예를 들면 내 기준으로 보자면 적게는 3만원짜리 DVD를 질렀다던가 하는 수준에서 많게는 몇십만원짜리 미니 컴포넌트나 XBox360을 질렀다 정도를 주로 지칭하니 이 정도까지는 그렇다고 하자. 하지만 명백히 생활수준이 범용한 사람이 물건 하나에 몇백 몇천을 질렀다고 하면, 그리고 그런 일이 한두번이 아니라고 하면 이것은 지름신의 수준이라기보다는 이미 모 소설로 유명해진 쇼퍼홀릭의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무조건 절대 액수가 높다고 해서 나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극단적으로 예를 들자면, 누가 설령 한 벌에 3천만원짜리 옷을 샀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의 연수입이 몇십억에 육박하면 그것은 좋지 않은 소비행태라고는 할 수 없다. 그의 경제수준은 그런 재화를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뒤집어 보면, 불과 3~5만원짜리 DVD 한 장을 샀다고 해도 그 사람의 수입이 한달 몇 만원 수준이라면, 이것은 명백히 그의 경제수준을 초과하는 소비이고 이는 단적으로 말하면 좋지 않은 행위이다.

물론, 단순히 이 기준으로만 판단할 수는 없다. 여기에 소비행위의 빈도수 또한 고려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위의 예로 설명하자면, 단적으로 좋지 않은 소비형태라고는 했지만 월 5만원의 수입이 있는 사람이 매월 만원씩 모아서, 5달만에 DVD 한 장을 샀다고 하면 이것은 이야기가 달라진다. 또 반대로 연수입 10억인 사람이 3천만원짜리 옷을 사는 경우에도, 이 사람이 그런 옷을 한 달에도 서너 벌씩 산다면 이것은 분명 그의 수준을 넘어서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결국, 과소비라는 건 "전체적인 액수를 총합하여 높은 빈도로 자신의 경제능력을 상회하는 소비행위를 하는 것" 정도로 정의할 수 있겠다. 극단적인 예로 옛날에 모 프로그램에 나왔던 명품중독 주부의 이야기가 있다. 자신이 버는 돈으로도 모자라서 남편이 버는 돈까지도 명품에 쏟아붓고, 그조차도 모자라서 결국엔 카드빚까지 내면서 명품을 사다모으는, 뭐 그런 이야기다.

최근에는 이런 좋지 않은, 일종의 쇼핑중독까지도 지름신이라느니 쇼퍼홀릭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으로 포장하여 긍정적인 이미지가 되어 가고 있는 듯 하고, 이런 점은 매우 우려스럽다. 개개인의 자유라는 관점에서 보면, 내가 벌어서 내 돈을 쓰는데 뭐가 문제냐는 의견이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이야기다. 먼저 사회는 나 혼자 무인도에 틀어박혀서 인터넷 클릭으로만 쇼핑하는 곳이 아니다. 필연적으로 사람은 사회에서 살아갈 수 밖에 없고, 즉 이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개개인이 노출된다는 이야기이다.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데는, 일본인의 논리는 아니지만 저마다 적절한 위치가 있기 마련이다. 패리스 힐튼이 상류사회 파티에 몇천만원, 몇억짜리 드레스를 입고 나온다면 그건 아무 위화감이 없겠지만, 평범한 회사원이 몇백, 몇천만원짜리 명품이나, 몇십억짜리 자동차를 몰고 다닌다면 그것은 분명 위화감이 들 수 밖에 없다.

두 번째로, 이것은 결혼하지 않고 부모님과도 상관없이 평생 독신으로 혼자 살 사람이라면 해당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결국 인간은 가정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살게 되는 것이 보통이다. 가정이라는 곳은 혼자가 아니다. 나 혼자만의 욕망을 충족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이 아니라는 것이다. 남편이, 아내가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여기에 부모님이나 자식이 추가되기도 한다. 가정이라는 테두리 안에 있는 한, 그 사람은 "내가 벌어서 내가 쓴다는데 무슨 상관이야?"따위의 말을 꺼낼 수 없게 된다는 말이다. 그것은 다른 가족 구성원들에 대한 무책임한 발언이고 태도다.

조금 전 예로 든 명품족 주부의 경우가 바로 이런 예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의 과소비로 자기 자신 뿐 아니라 남편까지도, 결국은 집안의 재정상황 자체를 무너뜨리고 말았다. 나 하나만의 문제로 끝나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말이다.

적어도 사회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이라면 "내가 내맘대로 하겠다는데 무슨 상관인가"라는 발언을 아무 책임 없이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실 저런 논리를 적용하기 시작하면, 세상은 엉망이 될 것이다. 내가 만든 회사에서 내가 사람 고용하겠다는데 장애인차별금지는 왜 있으며 노동자 보호는 왜 해야 하는가? 내가 맘에 안들어서 내가 만든 회사에서 내가 사람을 자르겠다는데, 너희가 무슨 상관이야? 하지만 당연하게도 이것은 말도 안되는 주장이다. 소비에 대한 "내맘대로"주장 역시 마찬가지 맥락이다.

돈을 모아서 자신이 사고 싶은 것을 사는 것, 물론 좋다. 하지만, 그것도 자신의 능력의 범주 안에서 해야 한다. 자신의 능력 외의 것을 사고 싶다고 앞뒤 생각없이 사버리는 순간, 자신은 물론이고 자신이 속한 집단마저 불핼하게 만들 수도 있으니 말이다. 대책없이 지르기 전에 한번쯤 자신에 대해 뒤돌아보는 태도,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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