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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오기는 꽤 되었는데, 이것저것 딴짓하다가 결국 이제야 감상을 올리게 되는군요.
아시다시피 007의 첫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시리즈에서 정형화되었던
제임스 본드의 이미지가 여기서는 희박합니다. 객기를 부리기도 하고, 실수도 하며,
마티니에 대한 그 까다로운(?) 주문도 없고, 자기소개도 다릅니다.
생각해보면 이것은 지금까지 007 시리즈가 변화를 겪을때마다 추구되었던
'과거로의 회귀'의 일종일지도 모릅니다. 물론, 지금까지의 회귀와 이번의 그것은
임팩트가 확연히 다릅니다. 뭐니뭐니해도 지금까지 우리에게 알려져 있던
본드라는 인물이 형성되기 이전의 이야기이니까요.
이러한 시리즈물의 과거로의 회귀, 또는 시리즈물 이전의 스토리는 영화나 게임 등
많은 곳에서 시도되었던 바 있습니다. 스타워즈 역시 4~6편의 이전 이야기인 1~3편이 제작되었고,
게임으로 이야기를 돌려보면 팔콤의 Ys 역시 최근작 오리진에서 이러한 시도를 하였으며,
애니메이션으로는 건담 등이 시대를 거슬러올라간 시리즈를 등장시킨 적이 있습니다.
카지노 로얄은 도입부부터 시리즈의 전통에 어긋나기 시작합니다. 전통적 인트로인,
본드가 총구 방향으로 총을 발사하는 장면은 그대로이나 시리즈에서 유명한 여성
실루엣이 등장하지 않지요. 또 초반부에서도 요원이 실수로 목표를 놓치자 뒤쫓다가
결국은 대사관에서 사살해버리는 과격함(?)도 보여줍니다. 또 M의 자택에 허가 없이
들어가기도 하지요.
볼 거리는 적당하게 많은 편입니다. 액션 장면 뿐 아니라 초반의 마다가스카르 시장터에서
중반의 몬테네그로, 후반의 베네치아(...맞던가?)에 이르기까지, 눈요깃거리는 이전의
007에 못지않은 풍부함을 자랑합니다. 무엇보다 본드라는 인물의 형성과정을 센스있게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볼 가치가 있는 영화라고 해 두고 싶군요. 커다란 점이라면 이전 카지노 로얄
을 다룬 리뷰들이 수없이 말한 '본드가 여자를 진심으로 사랑하지 못하는 이유'에서부터,
작게는 이후 시리즈에서 왜 M의 자택에 본드가 등장하지 않는지 등등.
약간의 불만이라면 지금까지와는 다르게(물론 이것도 일종의 시리즈 자기 부정에 속할 수도
있습니다만) 거대 악역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 르 쉬프가 중반까지 악역으로 등장합니다만
결국 따지고보면 그는 중간 역할 정도에 불과했으며, 영화의 클라이막스 부분에서는 이미 그가
퇴장한 이후라는 점에서 본드가 맞서 싸울 거대 악당이 없다는 점은 액션 영화로서는
다소 아쉬운 점으로 남았습니다.
007의 스토리상 첫 영화라는 점에서, 지금까지의 007을 모른다고 해도 눈도 즐겁고 - 액션 신으로
인해서든, 에바 그린의 미모에 의해서든, 혹은 대니얼 크레이그의 뜬금없는 근육질 몸매로든 -
스토리도 재미있는 영화. 또 시리즈를 알고 있다면 모두 제쳐두고서라도 영화의 마지막, 대니얼
크레이그의 마지막 대사 "Bond, James Bond." 한 마디로 희열을 느낄 수 있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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